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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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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아빠의 장례식

작고 아름다운 아빠의 장례식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논의하기 전에 아빠가 서둘러 떠나셨지만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채비 작은장례식으로 의견은 모아진 상태였다. 병원으로부터 아빠 사망선고를 받고 바로 채비장례에 전화하여 장례지도사를 지정받았다. ​작은장례식은 공간채비에서 치르기로 했고, 장례지도사는 아빠가 장례 3일 동안 계실 무빈소 영안실을 알아봐 주는 것을 시작으로 입관 발인 화장 장지 선정까지의 모든 절차를 우리와 상의 결정하여 진행해 주었다. 하루 동안의 빈소를 차리고 추모식 없이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자유롭게 조문객을 맞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추모식을 따로 진행하지 않았지만 추모 형태의 장례식이었으므로 조문보를 쓰고 생전의 사진과 영상을 준비하며 전시할 유품을 챙겼다. 장례식 12시쯤 공간채비에 도착하니, 조문보를 필두로 생전 건강하셨을 때의 사진과 병원에서 찍은 영상들이 대형 스크린에 흐르고 있었다. 우린 평소에 사진을 가족끼리 공유해 두었고 병원 계시는 내내 동영상을 많이 찍어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를 알려주면 장례식 내니 BGM으로 틀어놓는다고 해서 아빠가 좋아하시던 포르테디콰트로의 노래를 요청했는데, 공간채비에 들어서니 포르테디콰트로의 노래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채비가 물어보지 않았다면 아빠가 좋아하는지도 몰랐을 노래이다. 고인의 유품을 전시하는 '메모리얼테이블'을 위해 아빠가 찍은 사진, 붓글씨 액자와 긴 세월 써 오신 일기를 이보다 소중한 유품은 없으리라​. 작은 장례식에서는 상복도 필수가 아니고 화환도 금지이다. 제사상도 차리지 않고 향도 초도 없다. 식사와 술도 없고 간단한 다과만 준비한다. 조문객을 맞는 것 이상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례식이다. 일회용품 하나 없는 친환경 장례식이다. 채비 작은장례식에서는 방명록만 쓰는 게 아니라 ‘메모리얼포스트’라고 추모글 쓸 기회도 주었는데, 부담스러워 안 쓰는 분도 계셨지만 정말 성심성의껏 아빠를 생각하며 글 써준 분들이 많이 계셨다. 추모의 글은 장례식 내내 추모의 나무에 걸어두었다가 조문보와 함께 입관할 때 넣어드렸다. 아빠 다 읽으셨지요? 영안실이 있는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장례식이 아니라서 입관을 둘째 날 하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 발인하기 전 영안실이 있는 병원에서 진행되었다. 장례식 끝나고 전시했던 아빠의 유품은 채비함에 담아주었다. 작은 장례식이고 50명 이내만 참석하는 가족장이라는 것 때문에 부고를 아주 제한적으로 알렸다. 가족이 아닌 가까운 지인께 알리면서 가족장이므로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장이어서 오고 싶어도 못 오셨다는 분도 계셨고 가족 같은 사이니까 꼭 가야 된다며 굳이 오신 분도 계셨다. 지내고 난 후의 내 생각은 이렇다. 가족장으로 할 거라면 가족 친지 외에 아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추모식 1시간 하는 찐 작은장례식을 하는 것이 맞고 우리 같은 형식의 작은 장례식이라면 굳이 가족장이라 이름 붙일 필요 없이 가까운 지인에게 까지는 알리되 오시라 마시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공간채비가 일반 장례식장에 비하면 앉을 자리가 적은 편이지만 조문 와서 내내 계시는 것이 아니고 또 야외 테이블도 있어서 100명 정도 조문객을 맞는데 무리가 따르진 않을 것 같았다. 부담될까 오시지 말라 했던 분들이 조문 와주시니 그렇게 반갑고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보다. ​작은 장례식을 준비하는 하루 종일 수많은 갈등이 없을 수 없었고 또 친척 어르신들께 한소리 들을 각오도 했으나 무엇보다​ 조문객 맞이에 집중되는 행사보다 아빠를 추모하는 시간이길 바랐다. 작은 몸짓이나마 장례문화를 바꾸는데 동참하고 아빠와의 이별이 조금은 의미 있고 특별했으면 했다. 그런데 웬걸! 어르신들이 작은장례식을 더 좋아하시고 잘했다 얘기해 주시고 심지어 연락처 알려달라는 분들도 꽤 계셨다. 그날 많이 편찮으셔서 오지 못하신 울 엄마, 손녀딸의 페이스톡 연결을 통해 보시고는 너희 아빠가 많이 좋아하셨겠다고 총평해 주셨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수정][삭제]

송지현 조합원
2024.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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