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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살아온 외할머니. 결혼하고 집을 나와서부터는 가까이 있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2년 넘게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를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의지하는 만큼, 엄마 또한 점점 아이 같아지는 할머니를 돌보며 마음이 복잡해지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삶이 잘 마무리 되도록 도와드리는 일이 엄마에게도 위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삶을 잘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례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얼굴을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채우고, 그런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정신없는 장례식을 치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허례허식이 아닌 정말 할머니를 추모하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장례식을 원했다. 협동조합에서 일하다 보니 기존 장례방식에 문제를 느끼는 협동조합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장례 협동조합을 찾아보게 되었고, '채비장례'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조합원이 되었다. '채비장례'는 장례식장을 빌려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들 중심으로 손님을 치르는 방식의 장례가 아닌,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데 중심을 두는 장례문화를 제안한다. 엄마에게 '채비장례'를 소개하고 함께 플래너님를 만나 상담을 받았다. 엄마도 의식은 간소하게 하고 추모는 깊이 있게 하는 채비의 장례방식대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할머니를 모신 시간이 길긴 하지만 외삼촌들의 의견도 중요하기에 명절을 계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외삼촌들도 엄마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할머니 물건도 차츰 정리해나가고 사진도 찾아서 스캔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장례가 아니었기에 함께 찍었던 사진이나 영상을 모으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 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추모식을 준비하는 경우에는 채비 플래너님과 두세 차례 더 상담과 소통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준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할머니의 임종을 맞게 되었다. 채비에서는 일반 장례식장을 빌리거나 무빈소로 진행하는 방법 등 다양하게 장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만, 엄마의 뜻대로 할머니를 애도할 수 있는 작은 장례로 진행하기로 했다. 추모 일정은 1시부터 8시까지 진행하기로 했고. 한 시간 전부터 동생과 함께 챙겨온 사진과 유품들을 전시했다. 병원갈 때 입으셨던 화사한 가디건, 생전에 아껴 입으셨던 고운 한복도 다림질해서 걸어놓고, 추위를 많이 타시던 할머니를 위해 엄마가 직접 떠 드렸던 니트도 걸었다. 조문객들을 맞기 전 플래너님께서 가족들에게 채비에 대해 소개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가족들 모두 조금은 낯설어 했지만 채비의 장례 방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추모 일정이 진행되는 공간채비 안쪽에는 유족들이 쉴 수 있도록 분리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한켠에 죽음과 이별에 관한 그림책이 있어 조문객을 기다리는 등한 함께 앍었다. 채비에서는 추모와 애도에 관한 교육과 모임도 진행한다고 한다. 플래너님께 사진과 영상을 보내드리면 추모공간에서 음악과 합께 상영해 주신다. 추모식을 진행할 경우 영상 제작을 해주시기도 한다. 빈소가 마련되어 있는 동안 가족들과 추모객이 모두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고인이 즐겨 듣던 노래나 음악이 있을 경우 유족들이 함께 듣거나 노래 부르기도 한다. 피아노도 있어서 원할 경우 직접 연주도 가능하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할머니의 고희연 영상도 잠시 상영했다. 입구에는 방명록과 부조함, 조문보와 메모리얼 카드가 비치되어 있다. 조문보에는 고인을 모르는 조문객을 위해 간략하게 생애사를 정리했다. 글은 할머니를 인터뷰 한 적 있는 아빠에게 맡겼다. 조문보는 유족들이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로 작성하기도 한다. 채비에 글과 사진을 보내드리면 만들어주시기도 하는데, 글이 좀 길어서 디자인은 직접 하고 인쇄 만 30부 정도 부탁드렸다. 조문보 이미지는 온라인 부고장에도 첨부해서 넣었다. 추모객들은 공간채비에 들어와서 우선 고인에게 헌화한다. 절을 하고 싶으면 절을 하기도 한다. 절한 후에는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유족의 안내에 따라 사진과 유품을 들러본다. 모아놓은 사진과 유품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인과의 추억을 나눈다. 그동안 몰랐던 할머니의 모습을 새삼 발견하기도 한다. 유품 중에서 손수건은 할머니를 기억하는 가족들과 추모객들이 나누어 가져갔다. 채비추모장례의 큰 장점은 제공할 음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 준비를 해도 되고 샌드위치 등 다과를 채비에 맡길 수도 있다.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식사비가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이 생기지 않는다. 전부 직접 준비하기에는 무리가 것 같아서 채비에 기본 50인분의 샌드위치와 컵과일, 떡, 커피와 병음료를 부탁드렸다. 샌드위치는 비건 옵션이 가능하다고 하셔서 10개는 비건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크림빵과 양갱 같은 간식을 추가로 준비했다. 조문객이 예상보다 많은 경우 샌드위치를 추가로 주문하기는 어렵다고 하셔서 걱정했는데, 샌드위치보다는 떡을 좋아하셨고 음료와 다과 위주로 자유롭게 가져다 드셔서 부족하지 않았다. 인근에 배달로 주문 할 수 있는 곳도 많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공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50명 정도라고 안내해 주셨고 실제로 공간이 아주 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격정 했던 것보다 조문객이 특정 시간대에 몰리지 않았고 술을 준비하지 않았던 때문인지 조문객들의 순환도 빨라서 충분히 여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어느 장례식에 가든 마음이 쓰였던 지점이 한가득 나오는 플라스틱 일회용 쓰레기였는데, 샌드위치를 종이박스와 종이 포장지로 준비해 주셔서 좋았다. 우리는 진행하지 못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제로 웨이스트 장례도 가능할 것 같다. 가족들, 조문객 , 어른과 아이들 모두 고인과 유족에게 메모리얼 포스트를 썼다. 아이들은 특히 카드를 나무에 거는 것을 좋아라 했다.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걸려 있는 나무를 바라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많은 분들이 할머니가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시길 기도해 주셔서 감사했다. 추모 일정은 가족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마무리 했다. 모아진 메모리얼 카드는 사진을 찍어 남기고, 임관 때 할머니 품에 엄마가 직접 넣어드렸다. 입관하기 전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미안하고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보다는 사랑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이야기해주라던 장례 지도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채비추모장례를 통해 할머니와 할머니를 둘러싸고 있던 관계들이 조금이나마 나아졌기를 바란다. 채비를 알게 된 덕분에 할머니의 장례가 서투른 표현이더라도 추모와 애도로 채워질 수 있었다. 삭막하고 형식적인 장례가 아닌 아름다운 장례문화를 시도하는 채비를 응원한다. 삶과 죽음은 떨어질 수 없는 짝꿍이기에 살아있는 모두가 진정으로 위로하고 애도하는 아름다운 이별을 경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수정][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