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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창 열사는 1989년 8월, 의문사한 학생운동가이다.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1986년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조소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판화 동아리를 창립하는 등 민족미술운동에 관심했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4학년에 올라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을 지내던 1989년 여름, 거문도의 유림 해수욕장에서 물에 빠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된 날짜는 여름방학 중이던 8월 15일로, 총학생회장인 이내창이 주도하기로 되어 있던 교내 8·15 기념식을 앞두고 8월 14일 학교에서 나가는 모습이 목격된 뒤 하루만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노태우 정부에서 단순실족 사건 또는 자살 사건인 것으로 결론지었으나 아무런 연고가 없는 거문도에서 목격자도 없이 사망했다는 정황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품었다. 2002년 대한민국의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중간발표를 통해 이내창의 거문도행에 동행한 여자의 신분이 안기부 소속 직원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 여자의 친구로 알려진 현직 군인 백승희를 포함한 다수 남자가 이내창의 사망시점에 거문도에 머물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발표는 이내창의 변사체가 발견된 이래 오랫동안 제기되었던 타살 의혹 또는 정보기관 개입설을 뒷받침하는 것이었으나, 국가정보원이 자료 제출을 거부한 탓에 2004년 진상규명이 더는 불가능하다고 결정됐다. 2014년 8월 15일, 광주 망월묘지에 묻혀 있던 그의 유골은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묘역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