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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장

박문숙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장

박문숙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장

누구도 그의 지병을 몰랐다. 오직 두 딸만이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그래서 돌연한 그의 별세는 모두를 놀라게 했고, 비통하게 만들었다. ‘민주화운동의 맏언니’로 불리운 박문숙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장(사진)이 2014년 4월 2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9세. 제4대 경기도의회 의원을 지낸 고인은 생활협동조합운동 외에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 활동을 하는 등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일했다. 경북 영주 출신인 고인은 서울여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1980년대부터 생활협동조합운동에 참여했다. 녹색환경운동 이사장을 맡아온 고인은 1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나 주변에 전혀 알리지 않고 투병해왔다. 고인의 남편인 고 김병곤 씨도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지난 1990년 암으로 숨져 주변인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고 김병곤씨는 박정희 독재시절인 74년 당시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 받고는 재판정에서 “영광입니다.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이 민생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에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고 외친 인물이다. 이후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부의장으로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섰던 그는 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을 끝까지 사수하다 옥살이를 했고 그 후유증으로 위암을 얻어 38살 짧은 생을 마쳤다. 고인의 장례는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고,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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