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채비리포트] 엔딩노트를 써야 하는 이유
- 2025.07.15 채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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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례 관련 뉴스를 보면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생전 장례식, 사전장례의향서, 웰다잉 등을 주제로 하는 기사들이 부쩍 늘었다. 이들 키워드의 공통점을 요약하면, ‘나의 장례를 내가 원하는 방식과 내용으로 설계하고 준비한다’는 것이다.
생전 장례식, 사전장례의향서 등
자기주도적 장례 문화 공감대 확산
‘죽음 없는 장례식’으로 불리는 생전 장례식은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까운 지인을 초대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생전 이별식이다. 지난 5월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문화계 인사 150여명을 초대해 치른 생전 장례식이 화제를 모았다. 박정자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의 삶을 배웅하는 사람들을 내 눈으로 보게 돼 행복하다. 헤어지는 장면도 축제처럼 해보고 싶었는데 웃으면서 보내주고 떠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전장례의향서는 생전에 자신의 장례 방식과 절차, 장소, 조문객 명단, 장지 등 장례 계획을 구체적으로 작성한 문서를 말한다. 나의 부고장을 누구에게 전할 것인지, 부의금을 받을지 말지, 조문객에게 어떤 음식을 대접할 것인지, 나의 시신을 어디에 묻을지, 유산은 누구에게 얼마를 상속할지 등을 미리 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장례는 갑작스런 죽음 이후 유족들이 기존 절차대로 치르는 형식적 의례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죽음과 장례도 자신의 가치관과 주관대로 미리 준비하고 직접 결정하겠다는 방향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요즘 웰다잉(well-dying), 웰엔딩(Well-Ending) 개념이 다시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 간담회를 열고 연명의료 결정제도와 장례문화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모았다. 웰다잉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으로, 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등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유언장, 사전장례의향서 등을 포괄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주도적 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초고령 일본, 종활 산업 50조 돌파
20대부터 엔딩노트 작성 자연스러워
기존의 웰다잉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의 웰엔딩은 죽음으로 가는 삶의 여정을 자기주도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웰엔딩의 필수품 중 하나로 ‘엔딩노트’를 꼽는 것은 그래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진단하고, 죽음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데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엔딩노트라고 하면 동명의 일본 다큐멘터리를 빼놓을 수 없다. 67세 은퇴 후 말기암 판정을 받은 스나다 도모아키가 11가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 과정을 보여준다. 2011년 개봉 이후 일본 사회에 ‘엔딩노트 쓰기’ 열풍이 일었다. 최근에는 버킷리스트 수준을 넘어,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활동을 뜻하는 ‘종활(終活)’의 하나로 엔딩노트를 적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은 나이 들어 자기 인생을 정리하고 사후 절차를 준비하는 것이 필수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2019년 기준 엔딩노트 판매량이 135만 부를 넘어섰고, 엔딩노트를 포함한 종활 산업 규모도 2022년 기준 연간 5조 엔(약 50조 원)을 돌파했다. 주목할 점은 죽음을 앞둔 7080 고령층만이 아니라, 20대부터 엔딩노트 작성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엔딩노트는 남은 생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미리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각종 결정을 글로 정리한 문서를 말한다. 연명의료, 장례 방식, 유언 내용, 재산 정리 방법, 가족과 지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 등을 포함한다. 자신이 원하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미리 정하고, 이를 위해 남은 시간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다.
일본의 엔딩노트는 제작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4가지 내용을 담는다. △자택 또는 요양시설 등 거주 형태, 연명치료 유무와 호스피스(간병) 등 ‘여생의 생활 설계’, △소지품 정리와 자산 목록, 재산 상속과 처분 방법 등 ‘생전 정리’, △장례 방식과 조문객 명단, 장례물품 등 ‘장례 준비’, △개인사 정리와 가족과 지인에게 남기는 말 등 ‘엔딩노트’로 구성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만든 ‘채비노트’
자기치유 글쓰기부터 장례 디자인까지
존엄한 죽음,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한 첫 단추는 엔딩노트 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몇 년 새 다양한 유형의 엔딩노트 책들이 출간됐고, 검색창에 엔딩노트를 입력하면 각종 정보가 수두룩하다. 스스로 빈 여백을 채울 자신이 없다면 기 출간된 책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엔딩노트를 고를 때 자신의 가치관이나 방향성에 맞게 구성됐는지를 살피면 재차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접객이 아닌 고인 중심의 추모 장례 문화를 이끌고 있는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지난 2024년 ‘채우고 비우는 삶, 채비노트’를 펴냈다. 채비노트는 ‘내 삶을 기억할 수 있는 기록물’을 목표로 크게 4가지 챕터로 구성됐다.
첫 번째 챕터는 ‘나/돌아보기’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나를 표현하는 각종 정보부터 내 삶을 움직였던 단어들,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날들, 버킷리스트, 유언장 등을 포함한다. 죽음 이후를 떠올리며 내 부고문과 묘비명도 직접 작성한다. 이를 통해 나 자신과 화해하고 위로를 건네는 자기치유 글쓰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두 번째 챕터는 ‘케어/보살피기’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미리 체크하고 준비하는 데 집중한다. 자가 건강검진, 건강계획, 간병 항목, 사전치매요양의향서 등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점검하고 결정할 사항들을 담고 있다.
세 번째 챕터는 ‘준비/마음다지기’로 자신의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사진일기, 약전 작성,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포함한다.
마지막 챕터는 ‘장례/채비하기’로 죽음 이후 자신의 장례를 미리 설계하도록 구성됐다. 사전장례의향서, 추모장례 목록, 메모리얼 포스트 등 장례와 관련해 미리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항목을 담았다. 디지털 유품, 유품 처리 방법, 자산 목록 등 유·무형의 자산 결정 항목도 포함했다.
단순한 항목의 나열이 대부분인 여타 엔딩노트와 달리, 채비노트는 각 챕터마다 채비만의 가치와 의미를 반영한 에세이를 수록해 감성적 공감과 내용적 몰입을 더한 것도 강점으로 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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