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채우고 비우고] 함께라서 외롭지 않은 사람들
- 2025.05.20 채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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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의 긴 연휴에 그동안 아껴두었던 영화를 보았다. <강변의 무코리타>라는 영화인데,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인 데다 정감 있는 포스터가 마음을 끌었다. 포스터에는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함께라서 외롭지 않아’라고 쓰여 있었다. <강변의 무코리타>를 연출한 감독은 오기가미 나오코. <카모메 식당>, <요시노 이발관>, <안경>을 연출한 바로 그 감독이다.
영화는 조용하고 작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어두운 과거를 안고 새로운 삶을 위해 오징어젓갈 공장에 취직한 '야마다'. 그는 공장 사장의 소개로 낡고 오래된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입주한다. 그곳에는 딸과 함께 살아가는 집 주인 '미나미',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가는 옆집 남자 '시마다', 검은 양복을 입고 아들과 묘석을 방문·판매하는 '미조구치'가 살고 있다.
무코리타 연립주택은 강변에 있는 낡고 허름한 연립주택이다. ‘무코리타’는 한자어로 모호율다{牟呼栗多)로 약 48분에 해당하는 불교의 시간 단위를 뜻한다. 산스크리트어 무흐르타(mūhurta)에서 유래한 말이다. 감독은 연립주택을 하나의 세계로 설정했다. 이 공간에서 인간은 고작 이틀의, 짧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짧아서 하찮고, 그래서 위대한 인생. 감독은 짧은 인생 서로 위하고 보듬으며 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야마다는 네 살 때 헤어져 인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그동안 느끼지 못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한다. 며칠 고민하던 야마다는 결국 시청 무연고 안치소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온다. 담당 직원은 아버지가, 악취를 견디다 못한 이웃의 신고로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야마다는 유골함을 방 한구석에 두었는데, 밤이면 은은한 빛을 내는 바람에 무서워서 잠을 설쳤다. 참다 못해 유골을 변기에 쏟아부으려 했고, 또 어떤 날은 마당에 묻으려고 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한 지진이 집안을 뒤흔들었고, 유골함이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야마다는 빈 오징어젓갈 용기에 뼛조각을 주워 담을 수밖에 없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무코리타 연립주택' 사람들. 살인 전과를 지닌 채 스스로에게 벌을 주며 속죄하듯 살아가는 야마다,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미나미, 아들을 잃고 세상과 떨어져 텃밭을 가꾸는 시마다. 집세조차 못 내는 가난한 미조구치. 이 사람들은 모두 죽음과 관련된 사연을 지닌 채 살아간다. 감독은 이들을 통해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만든다. 이들은 서로에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
소소한 교류 속에 서로를 알아가던 연립주택 사람들은 마침내 야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이웃들은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악기를 연주하고 두드리면서 강변을 행진한다. 행렬 속의 야마다는 아버지의 뼛가루를 허공에 뿌린다. 장례식이 이토록 따뜻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야마다 아버지의 유골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로 바뀌고, 홀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웰다잉(Well-Dying)’은 결국 ‘웰비잉(Well- Being)’이라는 것을 이토록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는 고립된 개인보다 연대하는 모두가 훨씬 힘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채우고 비우고’는 삶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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