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4%의 기적] 이사의 추억
- 2020.06.06 채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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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일을 한지 만 7년이 돼 간다. 2012년 9월부터 일을 했으니 말이다. 조합에는 입사 바로 전 해에 가입했다. 그때만 해도 이곳에서 상근자로, 이토록 오래 일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사람 일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처음 출근한 사무실 상황은 황당했다. 종로구 서촌에 있는 모 시민단체가 내준 작은 공간(두 평 남짓)을 서울조합이 쓰고 있었는데, 비좁은 것은 둘째 치고 기본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서울조합 사무실 문을 열자 ‘끼익’ 소리와 함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엄습했다. 실무자를 구하지 못해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한 시간여 청소를 한 후 자리에 앉아 전화기를 들었는데 먹통이었다. 전화요금 연체로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였다. 정수기 물은 언제 갈았는지, 마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연합회 사무실은 서울조합에서 멀지 않은 곳의 옥탑공간이었다. 작은 방은 대표의 숙소로, 거실은 사무공간으로 쓰고 있었다. 상근자는 사무총괄 상무와 장례지도사 둘이었다. 낡은 빌라 3층의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좁은 철제 계단이 이어졌다. 가파른 계단을 위태롭게 오르내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출근 하루 만에 못 다니겠다고 통보했다. 대표가 이유를 물었다. 나는 “우리 조합은 장례서비스를 하는 업체인데, 사무실을 보고 나니 도저히 신뢰가 가질 않는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데 누구를 가입하라고 권유하겠는가” 라고 답했다. 대표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고, 나는 당장 사무실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직터널 위 ‘사회과학자료원’ 건물 5층으로 옮겼다. 마을운동단체와 함께 쓰는 사무실이었다. 오래된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경복궁역에서 750미터 비탈길을 걸어올라, 다시 5층까지 올라오면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그래도 조합원 교육을 위한 강당이 있었고 매일 메뉴가 바뀌는 맛 좋은 구내식당도 있었으며, 널찍한 공간에 햇빛이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했다. 상무는 없는 돈에 무리했다며 걱정이 많았지만 다른 분들은 ‘장족의 발전’이라고 기뻐했다.
때마침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정국과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바람을 탔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홍보를 시작하자 조합원이 급증했다. 2013년 한해만 1천여 명 가까운 조합원이 가입했다. 애석하게도 이 기록은 아직 깨지 못하고 있다. 직원도 늘리고, 교육과 모임을 활성화하고, 홍보물도 정비했다. 장례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대로만 가면 머지않아 크게 성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그동안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해 오던 일부 지역조합들이 ‘자원의 분배’와 ‘주도권’ 문제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구구한 얘기를 다 적고 싶진 않다. 다만 한 가지, 결국 입장과 기대의 차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내홍과 갈등은 극심했고 이 여파가 3년 가까이 이어졌다.
초기 갈등을 겨우 수습하고, 조합원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평지’로 내려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 조합은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했다. 우리 조합을 믿고 지켜준 조합원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주차 공간이 넉넉한 경복궁역 인근 아담한 건물 2층으로 이사했다. 비록 임대이긴 했어도 우리 조합 최초의 32평 단독 사무실이었다.
무너진 리더십을 새로 세우고 상처를 추스르며 다시 신발끈을 조였다. 이후 6년여 동안 크고 작은 위기가 닥쳐왔다. 숨 돌릴 틈조차 없이 위태로운 상황을 견디고 문제를 해결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임원들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면서 묵묵히 업무를 수행한 상근자들, 바위처럼 굳건하게 우리 조합을 믿어준 조합원을 보면서 나는 여러 차례 감탄하고 감동했다.
그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까마득하다. 이 시절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 깨닫는 것은 안팎의 위기가 결국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고, 문제해결 능력을 제고시켰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위기와 불안이 꼭 나쁜 것이라 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이 과정 속에서 거듭났고, 아마추어를 넘어 ‘프로(?)’로 진화해 갔다.
그 정들었던 서촌 사무실을 7년여 만에 떠났다. 교통 편리하고 풍광 수려한 남산자락에 번듯한 사무실과 꿈에 그리던 ‘채비_문화공간’(52평)을 마련했다. 이제 ‘추모형 작은장례(채비장례)’, 다양한 조합원 모임과 행사,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치를 수 있는 멋진 공간을 디자인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목표가 분명하고 방향이 선명한 이동이니만큼 기쁘고 행복하다. 여기서 펼쳐질 미래가 무척 궁금하다. 우리가 그리던 미래에 한층 다가서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충무로 1호점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2호점, 3호점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우리 조합은 조합원과 함께 계속 성장하고 있다
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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