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5.04.09 00:00

제주 4.3사건 희생자를 애도합니다

무명천 할머니 정란희 | 위즈덤하우스
 

어두운 밤,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를 피해 사람들은 대숲이든, 굴 안이든, 나무 뒤에든, 몸을 감출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 숨었다. 집이 불타고 마을이 사라졌지만 목숨을 지키기 위해 누구 하나 나설 수 없었다. 그러나 아영은 집에 있는 음식을 챙기기 위해 집으로 향했고, 부엌의 곡식 항아리를 찾아들고 다시 텃밭을 향해 달렸다. 그때, 아영은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턱을 잃었다.

그즈음, 제주 이곳저곳은 피에 젖고 비명이 가득했다. ‘초토화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토벌대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불을 질렀다. 빌레못 동굴에서는 숨어 있던 마을 사람 29명이 죽었다. 북촌 너븐숭이에서는 3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희생되었다. 정방폭포, 다랑쉬굴, 모슬포, 성산포에서도.

어느새 할머니가 된 아영은 사라진 턱을 가리기 위해 무명천으로 턱을 감쌌다. 밤이면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악몽을 꾸고, 옆집에 갈 때조차 문을 잠가야 했다. 그렇게 무명천 할머니는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삶을 견뎌 냈다.

이 책은 광복 직후 제주에서 벌어진 4·3 사건 당시, 턱에 총을 맞고 슬픔과 외로움 속에 살아 낸 진아영 할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구성한 그림책이다. 무명천 할머니는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 평생을 살아야 했다.

턱이 없어 제대로 말을 할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무명천 푼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구석에서 혼자 음식을 먹었고, 누군가 집으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에 잠시 나갈 때조차 모든 문에 자물쇠를 걸어 잠가야 했다. 할머니는 제주 4·3의 상처로 인생을 잃어버렸다.

<무명천 할머니>는 제주에서 일어난 아픈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을 담았다. 죄 없는 많은 사람이 폭도로 몰려 죽임을 당한 제주 4·3 사건의 한복판. 턱에 총을 맞아 죽음 앞까지 갔다가 살아난 진아영 할머니가 ‘무명천 할머니’로 불리며 살아 낸 세월과 당시에서 현재까지는 이어지는 아픔을 함께 그렸다..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발췌)

‘메멘토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며, 삶과 죽음에 관련한 문화 컨텐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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