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5.03.12 00:00

[채우고 비우고] 어른을 찾습니다


몇 년 전 일이다. 딸 아이와 함께 작은 중식당에 갔다. 맛집답게 대기 줄이 길었고, 기다린 끝에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4인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식당 주인이 조심스레 “할아버지가 혼자 오셨는데, 합석 가능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딸 아이도 좋다고 해서 자리를 내주고, 수저와 물컵을 챙겨 드렸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맛있게 잘 먹었다. 무표정한 노인도 말없이 식사를 마쳤다.

운동 삼아 길을 걷는데 딸 아이가 불쑥 “아빠, 한국 노인들은 왜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해?”라고 물었다. 자리를 양보했고, 젓가락과 물컵도 챙겨 드렸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노인의 행동을 지적한 것이다. 나와 같은 세대는 “노인들은 원래 그래” 하고 넘어가지만,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자란 아이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딸과 동네 호프집에 가게 됐다. 성년인 딸과 호프 한 잔 나누고 싶은 게 아빠들의 로망 아닌가.

안주를 고른 후 손은 번쩍 들고 “여기요” 소리쳤다.

“여기 오백 두 잔 하고 돈까스랑 감자튀김! ”

종업원이 돌아간 후 딸이 말했다.

“아빠, 말이 짧다.”

‘주세요“를 붙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나름 괜찮은 노인으로 늙어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딱 걸리고 만 것이다.

그 후 말과 행동을 조심하려고 애쓴다.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 주면 ”괜찮다“고 말하고, 주문할 때도 ”주세요“를 붙이려 애쓴다.

혹시 누군가를 밀치게 됐을 때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려 한다. 될 수 있으면 상냥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무섭게 보일지도 모른다), 잘 웃으려고 연습한다.

친절한 노인이 되려면 피나게 훈련해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며칠 전 일이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자주 가던 식당에 갔다. 대기자 명단을 적고 기다렸고 자리가 나서 앉았다.

그런데 우리 앞에 한 명의 노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자기보다 먼저 우리를 앉혔다며 종업원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머쓱해진 우리가 자리를 비켜주겠다고 해도 소리 지르고 욕설에 가까운 언사를 퍼부었다.

'이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문제는 이런 모습이 너무도 흔한 일상이라는 점이다.

왜 노인들은 무표정하고 무서운 얼굴일까. 왜 그토록 화가 나 있고 언행이 거칠까.

나이가 많으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유교 사상의 유물일까. 산업화의 전사로 가정과 국가를 일으켰는데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젊은이들이 전쟁의 무서움과 빨갱이의 잔인함을 모르는 철부지라 생각해서일까.

그렇다고 해서 ‘고맙다’, ‘괜찮다’, ‘미안하다’ 소리를 못 하게 되는 것은 아닐 텐데.

이 세 단어에는 감사와 배려와 사죄의 뜻이 담겨 있다. 이걸 염치라고 한다.

염치없는 사회가 염치없는 인간을 만든다. 거꾸로 염치없는 인간이 염치없는 공동체를 만든다.

자고로 노인이라 하면 인생을 돌아보고 남은 날을 성찰하며 지는 해처럼 잔잔하게 늙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멋진 마무리에 집중해야 한다.

사납고 험하게 살 시간은 이미 가고 없다. 너그럽고 지혜로운 노인이 드물다.

평화로움과 인자함을 갖춘 어른은 더욱 귀하다. 그래서 분발해야 한다. 교양과 상식을 갖춘 시민이자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저절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채우고 비우고’는 삶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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