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0.06.05 00:00

[채우고 비우고] 우리 삶을 성공이나 실패로 말할 수 있을까


 

고 황OO님을 보내며

인천서구지역자활센터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자활 사례관리 담당자다. 그의 목소리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형편이 어려운 이의 장례 지원에 관한 문의였다. 그에게는 일상이고 매번 처리해야 하는 비슷한 사안일 것이다. 그럼에도 매번 절실한 목소리다.

그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마음 어딘가가 움푹 꺼지는 고통을 느낀다. 너무 많은 슬픔을 느끼는 사람과 타인에 대한 공감이 큰 사람은 이런 일이 매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통증 없이는 맞닥뜨릴 수 없는 일이다. 매일 자신의 마음이 우는 장면을 목격하는 사람들이지만 사명감으로 그 일을 완수해낸다.

고인은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근 한달 간 집중 치료를 받았다. 그의 아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성실하게 자활 근로를 했고 그것으로 병원비와 생계 유지를 했다. 아들은 군 입대를 한 달여 앞두고 있었다. 입대 전 어떻게든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해보고자 고액 알바를 시작했지만 업체에 이용만 당하고 사기를 당해 수감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가족의 노력에도 그는 지난 3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나자 고인의 아내와 아들에게는 병원비를 해결하느라 빌려 쓴 사채가 남았고 장례식은 어떻게 치를지 막막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전한 이별식은 고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가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과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참담함을 느끼는 일이 남았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상처는 무방비하게 겪어야 한다. 이별을 위한 어떤 절차도 거치지 못한다.

우리는 쉽게 가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실함에 대해 말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섣부르게 표현한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지워진 삶의 조건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누구도 가난을 선택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남은 것이 빚뿐인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대해 평가하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살다간 삶의 궤적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실패했다거나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은 그냥 살다 가는 것이다. 그냥 살다가는 시간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될 수 없는 것은 밝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며 살다 간다. 어떤 하루도 부정될 수 없이 살다가.

이별의 슬픔은 표현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마음의 깊이로 침잠한다. 오직 그 슬픔을 나누는 통증 정도 밖에는 접근할 수 없다. 그러고 나면 한 사람의 일생은 귀하다 못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대하게 살다 간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이만 갖는 영광은 아니다. 우리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환경, 생활, 생각, 실천 행위 등)를 직시하고 그것에서 출발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위치(자신이 그리는 이상향의 세계)를 정확히 가늠하고 있는 사람이다.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를 위해, 서 있는 위치를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떠나 보낸 그도 위대한 존재였다.

그가 좋은 곳으로 잘 떠났기를 기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우은주 | 서울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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