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5.02.11 00:00

[채우고 비우고]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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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무는 2024년 12월 15일(일) 오전 10시, 나는 서울의료원 정형외과 병동에 입원했다. 2인실이었는데 이미 선임자가 있었다. 70대 초반의 선임은 당뇨를 앓고 있었는데, 건강에 좋다는 ‘맨발 걷기’를 하다 감염돼 1차 염증 제거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주치의의 선고에 망연자실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평생 입원이나 간단한 수술 경험조차 없이 ‘꽃길’만 걷던 나는 환갑을 맞이한 해에 덜컥 입원, 수술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7년 전이었다. 지리산 밑에 집을 짓고 사는 후배 집에 놀러 갔다가 캄캄한 밤에 화장실을 가려다 낙상하면서 오른팔로 짚었는데, 그 충격으로 어깨 인대에 문제가 생겼다(의사는 노화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MRI 촬영 결과 수술 소견이 나왔다. 미심쩍었던 나는 영상 CD를 들고 서울의료원으로 갔다(나는 공공의료원을 신뢰한다). 정형외과 과장이 살펴보더니 “앞으로 10년은 더 (오른팔을) 써도 되겠다”는 상쾌한 진단을 내렸다. 나는 어깨에 주사 한 방을 맞고 콧노래를 부르며 귀가하였다.

하지만 10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다시 고장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팔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가동범위가 줄어들었다.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노원구의 정형외과 전문병원에서 다시 MRI 촬영을 하였다. 서울의료원보다 촬영 비용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당장 수술하자는 의사의 말에 비용을 확인했고, 650만 원 정도라는 답을 들었다. 대부분 실손보험 하나 정도는 갖고 있기에 전문병원의 수술비용은 점점 비싸지는 것 같았다. 나는 불행히도 유병자 실손(고혈압약 복용 후 가입)에 가입했기에 자부담률이 30%에 달했다.

비용도 부담스럽고 또다시 미심쩍었던 나는 영상 CD를 들고 서울의료원으로 갔다. 이곳에서도 수술 소견이 나왔고, 나는 입원 절차에 들어갔다. 수술비용은 앞선 전문병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수술이라는 게 마음만 먹는다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폐, 혈액, 내분비 등 여러 검사를 거쳐 적합 판정이 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수술을 진행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새벽부터 간호사가 왔다 갔다 하면서 혈압을 재고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슬슬 공포심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을 귀로 눈으로 살피던 옆 침대의 선임이 “전신마취 한다고 하지요? 조금 있다가 소변줄 꽂으러 올 겁니다.” 소변줄이라니


한 해가 저무는 2024년 12월 15일(일) 오전 10시, 나는 서울의료원 정형외과 병동에 입원했다. 2인실이었는데 이미 선임자가 있었다. 70대 초반의 선임은 당뇨를 앓고 있었는데, 건강에 좋다는 ‘맨발 걷기’를 하다 감염돼 1차 염증 제거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주치의의 선고에 망연자실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평생 입원이나 간단한 수술 경험조차 없이 ‘꽃길’만 걷던 나는 환갑을 맞이한 해에 덜컥 입원, 수술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7년 전이었다. 지리산 밑에 집을 짓고 사는 후배 집에 놀러 갔다가 캄캄한 밤에 화장실을 가려다 낙상하면서 오른팔로 짚었는데, 그 충격으로 어깨 인대에 문제가 생겼다(의사는 노화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MRI 촬영 결과 수술 소견이 나왔다. 미심쩍었던 나는 영상 CD를 들고 서울의료원으로 갔다(나는 공공의료원을 신뢰한다). 정형외과 과장이 살펴보더니 “앞으로 10년은 더 (오른팔을) 써도 되겠다”는 상쾌한 진단을 내렸다. 나는 어깨에 주사 한 방을 맞고 콧노래를 부르며 귀가하였다.



하지만 10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다시 고장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팔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가동범위가 줄어들었다.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노원구의 정형외과 전문병원에서 다시 MRI 촬영을 하였다. 서울의료원보다 촬영 비용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당장 수술하자는 의사의 말에 비용을 확인했고, 650만 원 정도라는 답을 들었다. 대부분 실손보험 하나 정도는 갖고 있기에 전문병원의 수술비용은 점점 비싸지는 것 같았다. 나는 불행히도 유병자 실손(고혈압약 복용 후 가입)에 가입했기에 자부담률이 30%에 달했다.



비용도 부담스럽고 또다시 미심쩍었던 나는 영상 CD를 들고 서울의료원으로 갔다. 이곳에서도 수술 소견이 나왔고, 나는 입원 절차에 들어갔다. 수술비용은 앞선 전문병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수술이라는 게 마음만 먹는다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폐, 혈액, 내분비 등 여러 검사를 거쳐 적합 판정이 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수술을 진행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새벽부터 간호사가 왔다 갔다 하면서 혈압을 재고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슬슬 공포심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을 귀로 눈으로 살피던 옆 침대의 선임이 “전신마취 한다고 하지요? 조금 있다가 소변줄 꽂으러 올 겁니다.” 소변줄이라니! 온갖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니까 간호사가 내 요도에 무슨 관을 쑤셔 넣는다는 거지?’ 수치심과 공포심에 입원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시간은 흘러 어김없이 간호사가 와서 바지를 벗으라고 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심호흡하라는 말과 동시에 무언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왔고, 그 충격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오줌통을 배에 찬 채 6시간을 누워 수술을 기다렸다. 마침내 힘센 사내가 와서 나를 수술용 침대에 옮겨 실었다.

수술실은 추웠다.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나의 수술방은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규모가 컸고, 수술대가 여러 개 있었다. 마침내 수술 시간. 집도의는 나의 어깨에 4~6개의 구멍을 뚫어 인대를 잇는 관절경 수술을 한다고 설명했다. 마취과 의사가 어쩌구저쩌구하는 소리를 끝으로 나의 기억은 소실되었다.

눈을 떠보니 입원실이었다. 가족들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옆구리에는 커다란 보조기가 장착돼 있었다. 이걸 4~6주 동안 24시간 끼고 있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옷을 어떻게? 밥은 또 어떻게? 회사는? 아무 생각 말고 회복에 집중하라고들 하지만 그럴 수가 있나. 5일 입원 퇴원했고, 고난의 4주를 보낸 후 마침내 보조기를 풀었다. 나와 같이 잠자고, 밥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며 24시간 뒹굴던 보조기여 안녕.

생애 최초 입원, 수술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병원은 갈 곳이 못 된다는 점이다. 오롯이 내 육신을 의사의 결정에 맡겨야 하고 내 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또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볼 수도, 음식을 할 수도, 샤워하기도 어려웠다. 배달 음식에 의존해야 하고 청소, 빨래는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나는 남은 연차를 소진해 4주를 견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그러니 조합원들이여. 새해에는 더욱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조심조심 살자고요. 아프지 말고, 넘어지지 말고, 술·담배를 줄이거나 끊읍시다. 건강해야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공동체를 위해 뜻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뒤늦었지만 조합원 여러분 새해 건강하시고, 가내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채우고 비우고’는 삶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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