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4.01.03 00:00

[채우고 비우고]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2024년 1월 1일 해맞이를 80여 동네 주민과 함께 22층 아파트 옥상에서 보았다. 날이 흐려 제시간에 해가 보이진 않았지만, 오전 8시 넘어 겨우 볼 수 있었다. 해마다 보는 일출이 뭐 그리 대단할까만, 내 생각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일은 신성한 종교의식처럼 경건해 보인다.

올해 1월로 나는 환갑을 맞았다. 어이가 없다. 이토록 많은 나이라니! 주변에서는 60이 뭐가 많냐, 60은 청춘, 인생 60부터라고 말하지만 다 헛소리다. 60은 노년기에 접어드는 나이다. 무엇보다 신체의 변화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머리는 반백이고, 시력은 흐리고, 기억력은 예전만 못하다. 왜 그리 영화 제목과 배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지.

내가 노인인 것은 생명 활동의 필연적인 현상이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내가 노인들을 관찰하면서 눈살을 찌푸렸거나 혐오했던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 예컨대 식당에서 일하는 분에게 반말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 자리를 양보받고도 ”고맙다“ 인사하지 않는 것, 생각이 다르다 해서 적대하는 것...

이왕이면 품위 있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될 수 있으면 필요한 말, 도움 되는 말을 하고, 공동체를 위해 작게나마 기부하고 봉사해야겠다. 죽는 날까지 내 발로 걷기 위해 운동하고, 책을 읽고 정보를 접하며 깨어 있어야겠다. 성숙한 인간이자 좋은 시민으로 살아야겠다. 편협하지 않고 지혜로운 노인으로 늙어야겠다. 이미 그런 모범을 보인 선배들이 있지 않은가.

최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로 알려진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며 장학재단 설립, 학교 설립 후 국가 헌납,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 지원 등 일평생 선한 영향력을 솔선수범한 분이다. 그는 많은 언론사의 요청에도 단 한 번도 인터뷰한 적 없다.

평생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한약방 건물 3층을 집으로 사용했다. 2005년 해외여행을 딱 한 번 다녀왔는데, 6.25 전쟁 때 전사했다고 알려진 친형을 찾으러 평양에 갔을 때이다. 수천 명에 이르는 가난한 학생에게 셀 수도 없이 많은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그는 장학금을 주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은 어느 자리에선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94년 작고한 장일순 선생은 원주에 대성학교를 세운 교육자이자 신용협동조합운동과 한살림운동을 펼친 사회운동가이다. 또 1970년대 원주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본거지로 만든 지도자이자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한 공생과 살림의 문명을 주창한 생명 사상가였다. 그는 단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나마 선생의 말씀을 모은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이 있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친구가 똥물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럴 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친구도 알아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입으로만 '나오라' 하면 안 나옵니다

2021년 4월 작고한 채현국 선생은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일 정도의 거부(巨富)였는데, 어느 해 홀연히 직원들에게 전 재산을 모두 분배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돈 버는 것이,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되어버리기 전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 자금을 지원하였고, 1988년부터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교육자로 살다 생을 마쳤다. 그의 교육철학은 단순 소박했다.

‘생명의 이치에 따라 즐겁고 발랄하게 함께 살기.’

그 자신 노인이면서 대접만 받으려 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노인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노인이라고)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거나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거짓말이다. 농경 시대의 꿈 같은 소리다. 늙으면 뻔뻔해진다' 같은 말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비판은 하나의 금기사항이었기에.

이 훌륭한 멘토들을 흉내내다 보면 조금은 닮을 수 있지 않을까.

괜찮은 노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환갑의 아침, 생각이 많아진다.

 

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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