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4.01.25 00:00

[24%의 기적] 희망의 여정


 

눈이 내린다. 작년 올해 참 눈이 잦다. 강원도 어딘가는 무릎 높이까지 눈이 내렸단다. 아파트 경비원 순호 형은 눈이 반갑지 않다. 넓은 단지에 내린 눈을 혼자 치워야 하니까. 강한 바람으로 눈을 날리는 송풍기나 기계식 제설 장비는 주민들이 쓰지 못하게 한단다. 냄새나고 시끄럽다고. 눈을 치워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비닐하우스촌에 사는 영숙 누님은 요새 회의에 잘 못 온다. 누님은 얼마 전부터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생업 겸 자신이 사는 마을공동체에 보탬이 되고자. 눈이 많이 내린 날 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무거운 눈에 지붕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돼서. 누님은 힘없는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괜히 전화했나 후회했다. 내 전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마 전 협동조합 중간지원 조직에서 실직한 후배를 만났다. 괜찮냐고, 어디 갈 곳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몰라요, 했다. 괜히 물었다 싶다. 나의 물음이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러고 보니 지난해 유독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많다. 그들은 또 어떤 고통에 직면하게 될지. 부디 그들이 회복력을 잃지 않기를.

사무실 앞 필동매운탕은 진작에 문을 닫았다. 해물나라 사장님은 폐업을 고민 중이다. 홍짬뽕 사장님도 허리가 아파 일을 접었다. 대한참치는 육류 메뉴를 추가했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우려로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연히, 폐업한 사장님이 다른 업소에서 일하는 것을 보았다. 아는척하지 않았다.

며칠 전 사회적경제 진영의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적경제는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원 감축, 기관 폐쇄, 예산삭감 등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내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후배가 희망은 만들어가는 거지지요, 했다. 희망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앞서 언급한 이들은 대부분 우리 조합원이거나 이웃들이다. 조합원들에게 신년 인사를 건네려다 그들 생각에 우울한 얘기만 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희망은 상대적 개념이다. 절망이나 좌절이 없다면 희망도 없다. 절망한 사람만이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 절실하니까.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더 갖는 것?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탐욕이다. 결핍이 없는 사람에겐 허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원해서 결핍 상태가 된 사람은 없다. 그저 주어졌을 뿐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결핍에서 충만으로 가는 과정이 인생 아닐까. 여기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결핍은 무엇일까. 그것을 아는 데서 희망의 여정이 시작된다.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나의 결핍은 오직 나의 의지로만 극복될 수 있다. 나에게 희망은 조합원에 대한 의무에서 출발한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희망은 의무를 동반한다고. 간절히 원하고, 어떤 절망에도 굴하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굳은 약속이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마치 사랑을 꿈꿀 때 모든 걸 거는 것처럼. 행동이라는 의무를 자임하지 않는 모든 희망은 가식이라고. 나의 희망이 거짓이나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의무감을 갖고 용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나무의 크기는 가지만큼 뻗어 나간다. 찬물로 세수하고 길을 나선다. 겨울바람이 제법 매섭다.

조합원 여러분 지난 한 해 고마웠습니다. 우리 조합을 믿고 지켜주셨습니다.

올해도 변함없는 지지와 응원 부탁합니다. 정성과 사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과 평화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전체 납입금 중 운영비율을 의미하는 ‘24%의 기적’은 조합의 중요한 이슈와 가치를 담은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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