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4.04.12 00:00

[채우고 비우고] 벚꽃엔딩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런 상황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자취를 감춘 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알려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이렇게 짤막한 우화로 시작한다.

나는 3월 18일부터 사흘간 양양 속초 강릉 일대를 돌아볼 일이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벚꽃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바로 그 주간에.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를 밑돌았고 한낮에도 영상 10도에 머물렀다. 눈이 내리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이런 날씨에 벚꽃이 핀다고?

아니나 다를까. 속초시는 ‘2024 영랑호 벚꽃축제’ 개막을 사흘 앞둔 3월 27일 긴급 공지를 통해 올해 벚꽃축제를 두 번에 나눠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속초시는 SNS를 통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라고 탄식했다. 속초뿐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벚꽃축제'의 경우에도 3월 29일 벚꽃의 꽃봉오리만 올라온 상태로 개막했다.

지난해 유독 빨리 피어버린 벚꽃에 서울은 물론 각 지자체들은 벚꽃이 다 지고 난 뒤 벚꽃축제를 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올해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벚꽃축제 기간을 개화 예상 시기에 맞춰 약 일주일가량 앞당겼는데, 꽃샘추위가 길어지면서 축제 기간에 꽃 자체도 보기 어렵게 됐다.

이처럼 벚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사는 남양주시 별내동에도 벚꽃은 예년보다 늦게 피었다. 그것도 시간차를 두고 여기저기 따로 피었다. 어떤 것이 지면 어떤 것이 피었다. 벚꽃이 무리 지어 피는 그 아름다운 광경은 이제 보기 어려워진 것일까.

”거미를 싫어하는 가정주부가 있었다. 8월 중순 이 여성은 지하실 전체, 계단 밑, 과일 선반, 천장과 서까래 등 구석구석에 DDT와 석유 증류물이 포함된 에어로졸 살충제를 뿌렸다. 살충제를 뿌리고 나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구토와 신경불안증을 겪게 되었다. 며칠 지나고 기분이 나아졌지만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9월에 두 번 더 살충제를 뿌렸다. 다시 병을 앓다가 일시적으로 회복된 후 또다시 살충제 뿌리기를 반복했다. 세 번째 살충제를 뿌리고 나서는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열이 나고 관절에 통증이 생기며 불쾌한 느낌이 계속되었고 한쪽 다리에 정맥염이 나타났다. 이 여성은 백혈병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다음 달 사망하고 말았다.“

<침묵의 봄>에 등장하는 사례이다. 이것은 우화가 아니다. 인간은 막대한 양의 화석에너지를 태우며 풍요와 번영을 누려왔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으로 배출했다. 마치 살충제를 마구 뿌리듯. 그렇게 만년설과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전례 없는 폭염, 홍수, 가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해는 1962년이다. 그로부터 6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왔다.

이텔 카슨은 살충제나 제초제 같은 독성 화학물질의 남용이 가져올 치명적 결과를 경고했다. 그 경고는 무시되었고 인류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돌이킬 수 있는 것일까.

침묵의 봄이 시작됐다.

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채우고 비우고’는 삶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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