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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비 이야기
[24%의 기적]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 2020.06.05 채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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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가 세상을 충격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전대미문의 역병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에 의한 호흡기 감염질환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 세계에서 속출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11일 홍콩독감(1968), 신종플루(2009)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했다. 이 역병은 전파속도나 치명률에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면서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20년 5월 현재까지도 인류는 패닉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국가의 의료역량을 총동원해 전쟁에 준하는 전방위적 방역활동을 펼친 끝에 기세를 잡아가고 있다. 끈질기고 능동적인 정부의 대처와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로 다행히 4월 초부터 코로나19의 세력은 현저히 약화되었고, 점차 수그러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할 만큼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5월 6일 현재 전세계 확진자는 3백61만5천380명, 사망자는 25만6천26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확진자 1만806명, 사망자 255명으로 단연 방역에 성공한 모범적인 국가로 꼽힌다. 우리는 그나마 선방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환자와 사망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몇몇 국가의 의료체계는 포화 혹은 마미상태에 이르렀고, 시신처리마저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미국에서 발생했다. 사망자가 수만 명에 이르자 미국은 하트섬에 코로나19 사망자를 집단매장하기 시작했다. 하트섬은 뉴욕시 브롱크스 북동쪽의 외딴 섬이다. 길이 1.6km, 폭 530m의 외딴섬은 150년 동안 무연고 시신을 안치하는 묘지로 사용돼 왔다.
외신이 전한 사진을 보면 포클레인이 땅을 깊고 길게 파 놓은 곳에 여러 개의 관을 겹쳐서 한 번에 쌓아 올렸다. 이는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관이다. 사망자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자 이를 대량으로 처리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이보다 앞선 이탈리아의 상황도 무척 심각하다. 이탈리아 북부 병원의 영안실은 물론 예배당마저 관으로 가득 찼고, 안치할 묘지가 부족해 트럭에 실린 관은 방치됐다. 시신은 사망판정과 동시에 비닐봉투에 싸여 봉인되었다.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시신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시신처리에 고심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 2월 보건복지부는 발 빠르게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을 정해 시신을 처리하고 있다. 다행히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 시신처리 시스템은 정상작동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이전에 누렸던 장례방식과는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의료기관에서는 환자상태가 불안정해지면 즉시 가족에게 알리고 임종 참관여부를 확인한 후 장례식장에 장례지도사의 대기를 요청한다. 이때 가족이 원할 경우 개인보호구를 착용해야 병실에서 환자의 면회가 가능하고, 환자 가족에게 사망 시 감염방지를 위한 시신처리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사전 동의를 구한다. 이와 동시에 중앙사고수습본부, 보건소(개인보호구 지원, 방역소독 등) 등에 상황을 통보한다.
확진자가 사망할 경우 의료기관은 중앙사고수습본부, 보건소(개인보호구 지원, 방역소독 등) 등에 상황을 통보, 유가족에게 사망원인을 설명하고 시신처리 시점을 협의한다. 유족이 원할 경우,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사망자 상태를 직접 볼 수 있도록 조치(격리병실 외부 CCTV도 가능)한다.
화장 시에는 동행하는 유족, 운구요원, 화장요원 등에게 개인보호구를 지급하고, 운구차량․화장시설 등을 소독하며, 장례종료 후 중앙사고수습본부에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이로써 ‘쓸쓸한’ 장례절차를 마치게 된다. 다른 나라에 견준다면 이마저 다행이라고 위로해야 할까. 최소한 짐짝 혹은 폐기물처럼 취급되지 않으니까…?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이전처럼 밥상을 마주하고 밥을 먹기도 어렵고, 주일마다 어깨를 붙이고 앉아 예배를 드릴 수도 없을 것이다. 마스크 없이 대중교통을 타기도 어렵고, 클럽에 가서 몸을 부비며 소리칠 수도 없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생활 속 거리 두기’로 바뀌었어도 ‘거리와 간격’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매 순간 행동을 제어할 것이다.
코로나19는 장례식 풍경마저 바꾸어 놓고 있다. 100여 년에 걸친 장례식 관습과 문화를 하루아침에 다른 모습으로 갈아치우고 있다. 장례식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고 조의금을 계좌이체 한다. 장례식장에서 큰 빈소가 아닌 작은 빈소를 찾고, 가족끼리 조촐하게 장례를 치르고 있다.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이던 병원장례식장과 상조회사 중심의 3일장 문화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수많은 조화가 입구에 도열하고 문상객이 찾아와 조문을 하고 술과 밥을 대접하느라 정신 없이 바쁜 장례식 풍경에 익숙하다. 정작 장례식의 주인인 고인은 보이지 않고 상조회사와 장례식장 직원들만 바쁘게 움직인다. 정신 없이 청구서를 받고 돈을 지불하다 보면 어느 새 장례식은 끝나 있다. 장례식에서는 정작 유족마저 소외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전의 장례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장례 분야에서는 이것을 후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동안 우리의 장례는 장사꾼들의 ‘돈벌이 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바가지와 불공정이 횡행했다. 이 기회에 작고 아름다운 이별, 추모가 살아 있는 가족 중심의 장례문화를 만들어 가자. 이제 우리가 꿈꾸었던 장례를 시작해 보자. 코로나19에도 어김없이 봄날은 찾아오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자란다.
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24%의 기적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가치, 이슈, 활동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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