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4.11.28 00:00

[24%의 기적] 눈길을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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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정호승 시인의 대표작 ‘수선화에게’의 앞 구절이다. 폭설이 쏟아지는 11월 말, 문득 이 시구를 읊조리는 것은 마음이 외롭고 쓸쓸해서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화는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세상엔 슬픈 일만 가득하고 지구는 서서히 죽어간다. 나는 자꾸 아프고 여전히 가난하다.

수선화는 가을에 심어 이른 봄에 꽃을 피운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한다. 그래서인가. 꽃말은 자기 사랑, 자존심, 고결, 신비이다. 고결하면 외롭다. 친구가 많지 않다. 자존심을 지키면 배가 고프다. 타협하지 않으니까. 좁은 길로 가는 이는 많지 않다.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았다. 참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간다. 기후위기는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벚꽃은 늦게 피었고, 여름은 덥고 길었다. 기상이변이 지구촌 곳곳을 휩쓸었다. 먼 이국땅에서 포성은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고금리·고물가는 일상이 되었고, 경기는 크게 후퇴하고 있다. 현실은 각박해지고 희망은 빛을 잃고 있다.

우리 조합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가 어려우니 조합원이 어렵고, 조합원이 어려우니 조합도 어려워진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다 보니 조합원 증가, 장례, 대관 등에서 정체가 지속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도 별 도움이 못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초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는 오랜 기간 활동이 부진했던 회원조합의 운영비를 반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우리 조합의 낭비적 요소를 없애고, 경영을 효율화해 사업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조합원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난해 이 정부는 협동조합 예산 90%를 삭감하고 사회적경제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이로 인해 중간지원조직들이 해산하고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돌봄 분야에서 역할을 해온 사회적경제가 위축되면서 우리 조합도 영향을 받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을 말하는 숨구멍 같은 존재이다. 2023년 4월, UN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안을 채택하고 사회적경제를 활성화할 것을 촉구했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시는 외로움을 견디며 앞으로 나가라 말한다. 하느님도 때로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멀리 퍼지고 있다지 않은가. 그러니 울지 말고 걷자. 걷고 또 걷자. 달리 더 할 것도 없지 않은가.

올해도 조합원의 믿음과 지지 덕에 견딜 수 있었다.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지켜주는 조합원들 덕에 조합은 아직 건재하다. 항상 고맙고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한해의 끝에서 다짐한다. 다가오는 새해는 더 빛나고 새로워질 것이라고. 그 다짐은 항상 배신당했지만 그래도 다시 다짐한다. 새해는 분명 올해보다 나으리라.

우리는 굳건히 조합을 지키고, 조합원과 함께 더 좋은 사회, 살 만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전진할 것이다.

김경환 |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전체 납입금 중 운영비율을 의미하는 ‘24%의 기적’은 조합의 중요한 이슈와 가치를 담은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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