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6.04.09 00:00

[채우고 비우고] 5년 만에 연고자가 된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한 작별

 

오늘 오전 부산시 영락공원에서 특별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쪽방주민 자조모임에서 함께 했던 주민(고 장OO)께서 5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부산시 동구청 공영장례 첫 번째 사례로 영락공원 영락원 지하 무연고 봉안실에 봉안되셨습니다. 지하 무연고실에 봉안된 고인은 5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산골 처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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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던 ‘내미는마음’ 주민들은 고인을 그렇게 보내드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우리가 연고자로 신청해 직접 산골을 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로 돌보며 공동체 관계를 맺어왔던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들을 연도별로 정리해 동구청에 연고자 신청서를 제출했고, 어렵지 않게 제가 연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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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고인의 유골을 인수하여 당시 함께 했던 분들과 영락공원 영락정에서 직접 산골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고인이 다녔던 교회 목사님께서 간단히 의식을 집전해 주셨고, 참석자들에게 점심식사도 대접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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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 영락공원에서는 공간 부족 문제로, 목함에 모셔진 무연고 사망자 봉안함을 빨간색 앨범 크기로 줄여 다시 모시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고인을 모시던 공간에 이제는 네 명의 고인을 모실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이는 봉안실 공간 부족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족이 있는 일반인들은 해당되지 않고 무연고 사망자만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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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영락공원 직원들에 의해 별다른 의식 없이 산골로 ‘처리’되는 것 대신, 생전에 함께 했던 이들과 고인의 추억과 기억을 나누며 작별의 공동체가 만남의 공동체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의미 있게 산골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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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살아 계실 때 목사님과 모임 주민들은 고인을 가족보다 더 정성스럽게 돌보았습니다. 병원 수발, 쪽방 방문, 알코올 병원 동행, 수술 보호자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인들의 돌봄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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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셨을 때는 공영장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행정 담당자와 말도 되지 않는 사항으로 실랑이하며, 주위 단체와 지인들의 십시일반으로 공영장례를 1일장으로 차분하고 존엄하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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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난 오늘, 행정 업무 절차 중 하나로 ‘산골 처리’되는 것 대신, 사회적 가족인 지인들이 연고자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아 최소한의 존엄한 의식을 치르고 산골을 진행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의미 있는 사례입니다. 사실 일부러 사례를 만들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행정 담당자들도 거의 처음 경험하는 사례이다 보니 조심스럽게 여러 번 확인하며 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돌봄의 관계를 증명하는 자료가 분명하다 보니, 타인을 연고자로 지정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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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연고자'가 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족이 되어가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공영장례 조문단으로 활동하면서 고인의 연고자로 지인이 지정받도록 도와드린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덕분에 제가 연고자로 지정받는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공영장례 조문단 활동 중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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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헌 조합원, 공영장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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