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6.01.15 00:00

그냥 저쪽으로 가는 거야

조원희 | 느림보


푸른 안개가 감도는 자작나무 숲 속, 검은 개가 작은 화분을 바라봅니다. 화분에 연꽃 한 송이가 막 피어나고 있습니다. 연꽃을 본 검은 개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자작나무를 다듬어 조그만 배를 만들고, 피리를 손질하고, 등불을 밝힙니다.

바로 그 시각, 강아지 한 마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공원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친구와 함께 걷던 길인데 오늘은 강아지 혼자입니다. 다시 홀로 기차에 오른 강아지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봅니다. 친구와 함께 여행 가던 날 탔던 바로 그 기차 안이지요. 바깥은 노을이 붉게 번져 가는 저물녘, 차창에 비친 강아지의 얼굴이 쓸쓸합니다.

기차에서 내린 강아지는 멀리서 비치는 푸른 등불에 이끌려 검은 개의 숲에 도착합니다. 그 곳은 세상을 떠나는 개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신비한 숲입니다.

<혼자 가야 해>는 반려견의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책입니다. 삶을 내려놓고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강아지의 특별한 여행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 조원희는 공포의 대상인 죽음의 신을 과묵하지만 사려 깊은 검은 개로, 강아지의 순수한 영혼은 아름다운 연꽃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또한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공간을 푸른 안개가 감도는 신비한 숲으로 묘사했습니다.

검은 개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로 슬픔에 빠진 개들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영혼이 담긴 연꽃 송이들을 소중히 거두어 안고 강가로 향합니다. 이제 연꽃 송이들을 강물에 띄우는 시간, 개들은 강가에 준비된 각자의 배를 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납니다. 그런데 배에 오른 강아지 한 마리가 잠시 이쪽을 돌아봅니다. 강아지의 눈빛에는 친구를 향한 마지막 인사가 담겨 있습니다.

'친구야, 슬퍼하지 마. 난 그냥 저쪽으로 가는 거야.'

강아지는 다시 고개를 돌립니다. 그리고 힘차게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혼자 가야 해>는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슬픔이 아닌, 따스한 위로를 전합니다. 죽음은 영원한 상실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라는 것을 강아지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발췌)

‘메멘토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며, 삶과 죽음에 관련한 문화 컨텐츠를 소개합니다


  • 공유링크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