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고 비우고

채비 이야기

2026.01.15 00:00

[24%의 기적] 장례를 넘어 관계로, 채비플래너가 불러온 변화

 

참 별일이다.

대안 장례 민간자격증인 ‘채비플래너’ 교육에 예상 밖의 사람들이 몰렸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꽤 긴 시간 동안 자기 돈을 내고(지역 공동체의 지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정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다음 주면 종강이다. 시민교육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사례는 연구 대상이다.

어르신 돌봄 종사자나 사회적 경제 활동가뿐만이 아니다. 직장인, 중년 시민, 청년, 부모의 죽음을 준비하는 자녀들, 스스로의 마지막을 디자인해보고 싶은 사람들까지. 결코 짧거나 가볍지 않은 교육과정임에도, 이들은 끝까지 앉아 배우고 기록하며, 울고 웃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이제 장례를 ‘서비스’가 아닌 ‘관계’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간의 장례는 절차와 비용, 빠른 처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순간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기엔 지나치게 산업화된 방식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묻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우리가 떠나고 싶은, 또는 떠나보내고 싶은 방식인가?”

채비플래너 교육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시민적 해답이다. 소박한 장례, 깊이 있는 추모, 애도의 과정, 기억을 돌보는 기술들을 다시 배우는 자리. 사람들이 그 자리를 향해 모이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잃어버린 감각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웰다잉 담론은 다양한 강연과 프로그램을 통해 꾸준히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실제로 부모나 배우자의 죽음을 맞닥뜨린 사람들은 곧 알게 된다. 죽음 준비 교육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있다는 것을. 죽음의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실무적’이고, 동시에 훨씬 ‘관계적’이며, 무엇보다 혼자 해결하기엔 너무 벅차다. 그래서 더 많은 시민이 실질적인 기술과 태도를 배우려 하고, 함부로 맡길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주체로 서보려 한다. 이것은 죽음을 둘러싼 책임과 권한이 다시 시민의 손으로 옮겨가는 큰 흐름의 시작이다.

그 배경에는 초고령사회가 가져온 구체적 고민들이 자리한다. 가족 구조는 이미 해체의 한복판에 있고, 병원 임종은 점점 더 고립된 형태로 굳어졌다.

누구나 언젠가 “나는 혼자 죽게 될까?”, “부모님의 마지막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같은 질문과 마주한다.

제도는 아직 충분히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 ‘배워서 내가 한다’는 새로운 생애말기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50~70대에게는 이 일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감각을 강하게 준다. 두 번째 인생의 일을 찾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역할’로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움직임이 단순히 개인의 노후 준비이거나 새로운 직업군의 형성에 그치는 건 아니다. 채비플래너가 내걸고 있는 핵심은 공동체다. 죽음을 다시 이웃의 일, 동네의 일로 가져오겠다는 뜻이다. 병원과 장례식장 중심의 시스템에 갇힌 죽음을 관계 속으로 되돌리는 작업, 낯설고 잊힌 애도의 문화를 회복하는 실험. 사람들은 바로 그 ‘공동체적 상상력’에 이끌린다.

혹시나 홀로 죽는 사회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함께 죽음을 돌볼 수 있는 사회’라는 대안적 상상은 더 이상 이상주의가 아니다. 필요에서 나온 현실적 비전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상은 이런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채비플래너 열풍은 죽음에 대한 시민적 주권을 되찾으려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움직임이다.”

사람들은 이제 죽음을 소비하지 않고, 다시 돌보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을 배우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마지막을 타인의 손이 아니라 공동체의 품에 맡기고 싶어 한다.

죽음은 사회가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주제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사회의 민낯을 가장 정확히 비춘다. 지금 한국에서 시민들이 채비플래너 교육으로 모여들고 있는 현상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잃어버렸던 마지막 감각을 되찾아오려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김수동 조합원, 채비플래너 자격증 과정 1기 수료생


*전체 납입금 중 운영비율을 의미하는 ‘24%의 기적’은 조합의 중요한 이슈와 가치를 담은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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