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지 않는다. 장례식장 지하에서 이뤄지는 현재의 3일장 문화는 고인보다 형식에, 추모보다 의례에 치우쳐 있다. ‘채비’는 이런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모토 아래, 협동조합 방식의 장례서비스를 시작했고, 도심 속 따뜻한 추모 공간에서 20~30명 규모의 ‘작고 아름다운 이별’을 실천해 왔다. 이들은 말한다. 삶을 준비하듯, 이별도 준비돼야 한다고. 채비는 오늘, 장례를 넘어 태도를 제안하는 브랜드다.
Q: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으로 상조 서비스를 운영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 배경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협동조합 방식의 장례 서비스는 당시 장례 산업의 구고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2007년 무렵, 상조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만 약 400여 개의 업체가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제어할 법적 장치는 미비했고, 현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부패와 비윤리적 운영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정 가격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관 가격이 50만원인지, 500만원인지 알기 어려운 상태인데, 유족들은 정보 부족과 급박한 상황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과도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저는 ‘이것은 심하게 말한다면 약탈경제와 다름 없다’고 판단하게 됐습니다. 시장 논리로도, 정부규제로도 제어되는 않는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2009년 12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 모여 ‘상조시장의 현황와 대안’이라는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이후 그 모임을 기반으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을 설립했고, 이는 공제조합 형태의 투명하고 윤리적인 상조의 대안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Q: 협동조합 방식이 상조서비스, 구체적으로 어떤 운영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계신가요.
우리가 처음 협동조합 방식의 상조서비스를 시작할 당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그 원칙들은 ‘상조시장의 대안’을 만들겠다는 우리의 초심을 잘 담고 있었습니다.
첫째, 일반 상조회사들과 동일하게 월 3만원씩 적립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초기 자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납입금 일부를 운영에 사용하게 되었지요.
둘째, 한살림생협의 마진 구조를 참고해 조합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마진만 책정했습니다. 초창기에는 22%, 이후 24%로 조정한 바 있습니다.
셋째, ‘절대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다’는 것을 핵심 운영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장례과정에서 조합원이나 유족에게 사례비를 일절 받지 않으며, 추가 이익을 위해 ‘업셀링’도 하지 않습니다. 넷째, 장례용품은 ‘직거래 공동구매’을 도입해 가격을 최대한 낮췄고, 마진도 최소화했습니다. 유족의 입장에서 부담이 되는 부분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였습니다.
이 모든 운영원칙은 기존 상조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보완하고, 투명하고 윤리적인 장례서비스를 가능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협동조합이 단지 형식이 아니라, 사람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Q: 홈페이지에서 채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일종의 죽음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강좌처럼 보였습니다.
채비학교는 우리 브랜드의 철학을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예비상주학교’라는 이름을 제장했습니다. 이는 상주가 되기 전에 미리 준비하자는 의미였지요. 하지만 직원들의 피드백을 받아 ‘채비학교’로 변경했습니다. 상주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예비상주’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다는 의견이 있었거든요.
사실 이것이 채비학교의 본질입니다.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니, ‘학교’라는 개념이 탄생했습니다.
채비학교는 큰 틀의 카테고리로, 그 아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고인의 유품이나 중요 서류를 보관할 수 있는 ‘채비 박스’ 교욱, ‘채비 치유학교’ 등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성공적으로 진행중이고, 일부는 아직 준비 중입니다. 이 모든 교육 프로그램들을 ‘채비학교’라는 이름으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젊은 세대들은 채비의 장례방식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실제 사례를 보면, 손녀나 청년들이 부모님을 설득하거나 직접 상주로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화나 직접 방문 상담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작고 간소한 채비장례’는 지금 세데에게 어울리는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1인 가구 증가와 프리랜서 노동의 확산을 3일 장례의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자녀가 많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민이 클 수밖에 없죠, 저는 젊은 세대가 채비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적극적으로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20년 후, 채비가 꿈꾸는 이상적인 장례문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이상’이라는 단어가 주어졌으니 상상해볼 수 있겠네요. 우리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상조사업만 하려고 만든 조직이 아닙니다. ‘공제, 측 상호부조 공동체를 지향했고, 사람이 살아가며 꼭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적정한 비용으로 제공하자는 철학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웰다잉 토탈서비스‘를 구현해 가고 싶습니다. 1인 가구가 생전 비용을 신탁해 지인이나 친구가 장례를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장례, 공공산골 장지 운영, 장례 지원센터 설립 등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함께 한다면 언젠가는 현실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