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지 않는다. 장례식장 지하에서 이뤄지는 현재의 3일장 문화는 고인보다 형식에, 추모보다 의례에 치우쳐 있다. ‘채비’는 이런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모토 아래, 협동조합 방식의 장례서비스를 시작했고, 도심 속 따뜻한 추모 공간에서 20~30명 규모의 ‘작고 아름다운 이별’을 실천해 왔다. 이들은 말한다. 삶을 준비하듯, 이별도 준비돼야 한다고. 채비는 오늘, 장례를 넘어 태도를 제안하는 브랜드다.
Q: 채비 추모장례 공간의 위치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우리는 장례식장의 입지를 선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이 ‘도심 접근성’이었습니다. 단순히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장례문화가 일상 안으로 스며들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장례가 아직은 멀고 낯선 의례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도심 속 일상적인 거리에서 채비를 만날 수 있어야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장지의 개념이 아닌, 살아 있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지금의 위치를 선택했고, 일반적인 병원 장례식장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채비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조용하고 따듯한 분위기, 볕이 잘 드는 환한 공간을 중심으로 조문객과 유족이 머물 수 있는 여유- 이 모든 것이 ‘작고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우리의 브랜드 슬로건을 담기 위한 공간 전략입니다.
Q: 채비에서 진행한 장례식장의 실제 운영방식과 고객 반응은 어떻습니까.
채비는 기존 3일장 중심의 장례 시스템에 대한 대안적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 방식이 익숙하고 편하신 분들은 그 방식을 선택하면 되고, 좀 더 작고 의미 있는 이별을 원하시는 분들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거죠. 지금까지 약 70건 정도의 장례를 진행했는데, 고객들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우리가 ‘하루장’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이틀장’의 형태로 운영됩니다.
첫째 날은 채비 공간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지인과 작은 환송회를 진행합니다. 어떤 경우는 반나절만 간단히 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하루 종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고인을 전문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염습 및 입관 절차를 진행한 뒤, 화장장이나 매장지로 이동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이 ‘고인 중심’으로 설계된다는 점입니다. 고인을 기억하고, 고인에게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사실 많은 분이 장례식은 ‘3일은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준도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기 때 비롯된 관례에 불과합니다. 고정된 형식보다, 남겨진 이들이 진정성 있게 이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가 바로 채비의 장례입니다.
Q: 현재 한국의 장례문화, 특히 ‘3일장’이라는 관습은 언제부터 형성된 것인지,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많은 분이 3일장을 전통적인 장례문화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오늘날의 3일장 관행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장례가 지나치게 길고, 비용과 시간이 과도하게 들어간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장례 일정을 3일로 ‘표준화’하고, 병원-장례식장-봉안당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장례의 모든 과정을 규격화했습니다.
동시에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물자 운송과 도로·철도 확장을 위해, 묘지를 ‘공공질서’ 문제로 간주했습니다. 서울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묘지들을 공동묘지 형태로 외곽에 몰아넣었고, 죽음은 도심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후 우리의 도시계획과 생활 문화 속에서도 죽음은 점점 더 주변화되고, 장례는 점점 산업화했습니다. 반면 일본을 방문 했을 때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에 신사와 묘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동네마다 작은 장례식장이 존재하더군요. 1층엔 장례용품을 전시하고, 2층에선 소규모 장례식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였는데, 장례가 일상 속이 작고 조용한 이별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국의 장례문화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산업화’ 하였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발달사를 보면, 슈퍼마켓이 편의점으로, 편의점이 대형마트로 흡수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장례문화도 비슷합니다. 지금은 대형병원과 대기업이 장례식장을 운영하며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고, 이 구조는 ‘수익성’ 중심으로만 작동합니다. 그 결과, 정작 장례의 본질인 ‘고인에 대한 추모와 유족에 대한 위로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깊은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