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두레협동조합
사회장
장준하 독립운동가
-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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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반대투쟁을 벌이다 숨진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2014년 3월 30일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공원에 안장됐다.
고 장준하 선생은 1918년 평북 의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국 학도병에 입대하여 중국으로 끌려갔으나 그해 7월 탈출해 1945년 광복군 대위로 임관되었다. 같은 해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사람으로서 환국해 김구 주석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민주의원 서기, 민주의원 비서 등을 거쳐 조선민족청년단 중앙훈련소 교무처장, 대한민국 정부 서기관, 국민사상연구원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 잡지 <사상계>를 발행, 자유·민주·반독재 투쟁에 헌신하였으며 1962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1967년 4월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되었고 6월 옥중출마 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의문의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2012년 8월 장준하 선생 묘소의 옹벽이 무너져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 함몰 골절 등 흔적이 최초 공개되면서 타살의혹이 다시 제기됐다. 장준하 선생 사인진상조사공동위원회는 26일 장준하 선생의 유골 정밀감식 결과 ‘머리 가격’으로 숨진 뒤 추락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2013년 3월 28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그의 두 번째 장례, 겨레장이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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