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장례

장례 후기

2020.06.06 00:00

효도하는 법

  • 최고관리자 20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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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은 아버님의 임종을 지켰다. 하지만 브라질에 거주하는 딸은 ‘코로나19’로 인해 입국할 수가 없었다. 두 아들은 최선을 다해 아버님을 배웅해 드렸다. 근래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체로 가족끼리 조용히 치르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 좋아하시던 부모님을 위해 큰 빈소에서 시끌벅적하게 장례를 치르길 원했다. 많은 분들에게 부고를 전했고 오시는 손님들이 적당한 거리유지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큰 분향소를 빌렸다.

불교신자였던 어머님은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위해 낙산사에 신위를 의탁하길 원하셨다. 서울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발인하여 충주화장장에서 화장하고 제천 선영에 있는 납골묘에 유해를 봉안한 후 다시 낙산사로 이동해 신위를 모시고 서울로 돌아와야 하는 복잡한 동선이었다. 전체 동선을 장의차량을 이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유족들은 화장장까지만 장의차량으로 이동하고 화장 이후에는 본인들의 차량으로 이동하려 계획했다. 나는 강하게 만류했다.

“아버님께 효를 다하고자 하고 어머님을 위하는 마음은 좋지만 그러다 사고라도 당하시면 큰 불효를 하게 되는 겁니다.”

긴 삼일장을 치르고 자가용으로 그렇게 운행하는 것은 졸음운전 사고의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었다. 유족들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당일에는 선영에 모신 후 장의차량으로 서울로 돌아오기로 하였고, 적당한 휴식을 취한 후 다음날 낙산사에 신위를 모시기로 했다.

유족들은 홀로되신 어머님 상심이 커지진 않을까, 혹여 예법에 그르치지 않을까 끊임없이 질문에 질문을 더 했다. 첫째 아들은 공영방송 임원이었고, 둘째 아들은 모 회사의 대표였다. 자부님도 주요 신문사의 임원이었다. 유족들이 내게 하는 질문은 항상 공손했고 정중했다. 무엇이든 먼저 내게 물어보고, 모두 모여 의논하고 마지막으로 어머님께 허락을 받았다.

고별과 입관의 시간. 각각 아버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바다 건너 먼 곳의 딸은 음성메시지로 아버님께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새로운 장례모습 중 하나인 것이다. 녹음된 딸의 목소리는 한참 동안 “아빠 사랑해, 고마워”를 반복하고 있었고, 작은 며느리는 딸의 음성이 끝날 때까지 한참 동안 아버님의 귀에 휴대폰을 받쳐 들었다.

충북 제천의 선영. 가족납골묘에 아버님의 유해를 봉안한 후 술 한잔 부어드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애들 걱정일랑 그만하셔~. 다 잊고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셔~!”

어머님 말씀에 유족들은 웃었다.

“엄마! 아빠 집 근처에서 서성거리시면 어쩔려고 오지 마래요~”

죽어서도 자식 걱정인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나는 아버님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딸을 대신해 카네이션 꽃다발을 만들어 올려 드렸다.

‘아빠 사랑합니다’

-딸 OOO 드림

김윤식|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장례지도사

[출처] 효도하는 법|작성자 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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