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장례

장례 후기

2026.07.10 00:00

[채비추모장례 이야기] 애도 없는 무빈소 장례의 허상

  • 최고관리자 202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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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례식장이 조용해졌다. 조문객이 줄고, 빈소도 줄어든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71.8%)이 자기 장례는 빈소 없이 치러도 괜찮다고 했다. 50대는 80.0%, 60대는 79.5%였다. 직접 장례를 겪은 세대일수록 이 대답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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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일본은 이 흐름을 우리보다 먼저 걸었다.

가마쿠라신쇼(鎌倉新書)가 2년마다 실시하는 「장례에 관한 전국조사」에 따르면, 한때 절반을 넘던 일반장(3일장) 비중은 2024년 30.1%까지 낮아졌고, 가족장이 50.0%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직장을 치른 유족 가운데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는 38.7%뿐이었다. 후회의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밤샘을 하지 못한 것", "이별의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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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 현장으로 돌아와서 무빈소가 증가한다는 숫자만 보면 결론이 쉽다.

사람들은 장례에 돈 쓰고 싶지 않고, 번거로운 것도 싫어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지난 반세기, 우리 장례에는 슬픔의 자리가 좁았다. 상주는 육개장 그릇 수를 세고, 부의금을 정리하고, 얼굴도 잘 모르는 조문객에게 밤새 고개를 숙였다. 사흘이 지나면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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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회사와 전문 장례식장은 돈벌이에 여념이 없었다. 슬퍼해야 할 유족이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으니 지쳐버렸다. 장례란 그저 돈 쓰고 피곤한 행사일 뿐이다. 부모의 장례를 그렇게 겪은 후 자기 장례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 최근 증가하는 ‘무빈소 장례’ 선호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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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같은 조사결과에서 응답자들은 이렇게도 답했다. "화려한 형식보다 고인의 삶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에 85.3%가 동의했다. 좋은 장례의 조건으로 '고인의 뜻을 반영한 장례'(47.5%)를 꼽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도를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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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유족이 되었을 때 접객 부담 없이, 의미 없는 비용 지출로 고민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배웅하고 싶어한다. 고인의 생전 사진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가족끼리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문제는 그런 애도의 방법이 지금 장례시장에 잘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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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장 패키지 아니면 빈소 생략, 이 두 갈래밖에 없다. 그러니 지친 유족은 어쩔 수 없이 '생략' 쪽을 고른다. 그리고 장례 후 유족은 자책감에 시달린다. 빈소가 있든 없든 애도가 있는 장례를 만들어야 한다.

애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곳이 있다. 바로 공동체 장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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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무빈소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는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이다. 혼자서 장례를 치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무대책의 도시화 정책이 낳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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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 사업이란, 전문 장례식장이란 바로 그 도시에서 성장한 장례 산업이다. 무빈소 장례 증가라는 현상에는 혜성처럼 떠돌다 혼자 소멸하는 도시인의 삶과 죽음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공동체가 있어 장례를 같이 해줄 수 있다면 지금의 무빈소 장례는 있을 수 없다. 애도는 원래 마을의 일이었다. 상포계(相扶契)라는 이름으로, 이웃이 상여를 메고, 음식을 나르고, 밤을 함께 새웠다. 슬픔을 나누어지는 관계망이 마을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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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비는 공동체로 애도하는 장례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실천이다. 채비 장례를 만들어 온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유족이 될 조합원이 주인으로서 운영한다. 재무적 성과보다 유족의 슬픔과 필요에 응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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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사진과 유품을 올린 자리, 생애사 낭독,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 한 곡. 접객 부담은 덜어내고, 애도할 시간은 늘렸다.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공영 장례 조문 활동을 하는 한겨레두레의 조합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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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은평, 부천 등 서울과 경기도 곳곳에 활동하는 채비 플래너들이 상업 장례 회사들을 따라 멀리 집 나갔던 마을 장례를 다시 살던 곳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실천이 특별하다기보다, 원래 있어야 했던 자리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편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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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무빈소를 이야기할 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말해야 한다. 무빈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겉치레와 접객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애도를 놓는 일이다.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슬픔에 온전히 머무를 시간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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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의 바람과 피로감을 뭉뚱그려 부르는 <무빈소 장례>라는 이름 대신에, 고인과 유족과 그 공동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채비 장례>라는 이름을 얼른 손에 쥐어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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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욱 채비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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