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장례
장례 후기
[채비추모장례 이야기] 외할머니의 크림빵
- 최고관리자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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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빵이 한 바구니 놓였다. 40~60대라면 다 알고 좋아하는 '삼O 크림빵'이다. 채비 조합원 강OO님의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즐겨 드시던 빵이라고 했다. 너무 반가웠다. 나도 좋아하니까. 판에 박힌 육개장 대신 고인이 생전에 즐겨드시던 음식을 장례식장에서 먹는 일은 흔치않다. 이 빵을 먹으면서 고인의 생애사와 유품들을 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외할머니는 단것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단팥과 크림이 같이 있어 더 달콤한 주종발효 빵, 강화도에서 가져온 인절미 젤리, 호박 맛 팥 맛 영양갱... 그보다 값나가고 입맛 당기는 음식도 있었지만 모두 크림빵, 인절미 젤리, 양갱을 부지런히 먹었다. 우리는 단지 음식만을 먹는 게 아니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떠나실 때 그 손맛도 잃어버리게 된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찾아가서 보약처럼 먹던 어머니의 밥. 별것 없는 일상의 밥을 먹고 또 걸어왔던 인생길. 그 맛을 잃어버리면 지치는 날에 어디를 가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될지 몰라 더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2020년도에 채비장례가 막 시작했을 때 어떤 유족은 친정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갈비찜을 만들어 먹고 싶어 했다. 마지막까지 어머니와 먹던 갈비를 씹으며, 양념이 배어 아릿한 냄새를 풍기던 어머니의 손 냄새와 맛을 마지막까지 붙들고 싶었을 것 같았다.
채비 추모식 장례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고인을 기억하고, 슬픔을 나누는 여러 일들을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의 음식을 나누고 싶다. 고인이 좋아하던 음악 플레이리스트로 추모현장 라디오를 진행하며 추억도 나누고, 유족을 일찍 모셔서 임종 과정에 쌓였던 피곤과 슬픔을 잠시나마 쉬게 하는 힐링명상도 하고, 조문 중에 그림책을 읽으며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조금이나마 쉽게 받아들이는 시간을 주고 싶다.
채비 추모장례는 모든 애도의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채비플래너 전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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