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장례

장례 후기

2024.10.12 00:00

[채비추모장례 이야기] 추모는 어디에서나

  • 최고관리자 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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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비추모장례의 공간 확정성을 보다

8월에는 공간채비가 아닌 곳에서 추모장례식을 치루었다.

안타깝게도 공간채비에 다른 행사가 예약되어 있었거나, 가족의 상황이 공간채비에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 인근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유족은 아버지의 추모식도 원했다. 채비플래너가 장례식장으로 출장을 나갔다.

접객실에는 채비플래너의 안내를 따라 아버지의 유품을 가지런히 전시해 두고, 집에서 작은 모니터 2대를 가지고 와서 가족들이 제작한 슬라이드 영상을 틀어두었다. 첫날 현장에 오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유족들이 너무 준비했다.

채비플래너는 저녁 즈음에 큰 모니터를 빈소에 셋팅하고 5~6명의 가족과 또 그만큼의 조문객을 모시고 빈소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자녀들이 아버지와의 추억을 많이 나누었다.

아버지는 ‘보리밭’이라는 가곡을 좋아하셔서 함께 들었다. 젊은 조문객이 그것을 ‘메밀밭’으로 기억해서 잠깐 함께 웃었다. 조문하려고 와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참관했다.

또 한 어머니의 추모식은 화장장 유족 대기실에서 이루어졌다.

공간채비에 공간이 없어서...너무나 죄송한 경우다. 하지만 그 좁은 유족 대기실에서 20여 명의 유족들이 무릎을 붙이고 앉아서 애도하고, 기억하고, 추억을 나누었다. 한 삼촌은 기타를 치며 노사연의 ‘만남’을 불렀다.

많은 조문객을 모시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모인 어머니의 형제와 사촌들과 함께 유족은 참 따뜻한 가족 공동체를 확인하는 듯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무감하게 태워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하지 않았겠는가!

공간채비를 벗어나, 유족들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현장에서 추모식을 진행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작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후로 채비 추모식을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겠다는 전망이 생겼다. 2020년 6월부터 시작한 채비 추모식 장례가 최근에 40여 건이 넘어가고 있다.

만 4년이 넘어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성장이 느리게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채비 추모장례식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제시되는 포맷은 단일하지만, 고인의 가족과 지인은 자신의 상황에 형편에 맞추어 진행했다. 채비 추모식 장례는 그만큼 유연하다. 시중에 상조 상품이 ‘패키지’로 묶여서 변화도 어렵고, 자신의 형편에 맞추어서 하기는 더욱 어려워 비용과 형식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하루 빈소를 차리고 8~10시간 조문받으며 추모식 진행, 빈소 없이 추모식만 진행, 때로는 이틀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 맞이하며 추모식, 마을에서, 카페에서, 추모식 없이 조문보나 유품 같은 애도장치를 이용한 빈소 세팅으로 조문만 받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이 유족이 되기도 하고, 가족 중에 막내가 상주가 되고, 일곱 딸이 상주를 하고, 친구들이 상주를 하는 추모식도 했다. 장례를 치른 후 49재에 추모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어떤 형태와 서비스를 고집하지 않고 유족이 원하는 방식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유연하게 유족의 필요을 받아들이고 만들어갈 때 생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애도의 순간들을 직면하게 되었고, 채비의 애도 자산이 쌓여왔다.

지금도 추모장례의 사례는 계속 쌓이고 있다.

바라기는 고인이 살고 있던 마을에서, 자신의 집에서, 활동하던 공유공간에서 추모식을 쉽게 진행하고 싶다. 한겨레두레의 장례지도사가 상조서비스를 제공하고, 고인이 살던 곳에서 마을 채비플래너와 이웃들이 그의 장례를 치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다.

한 사람의 죽음에 온 마을이 나서는 걸 보고 싶다. 죽음도 돌봄 받고 따뜻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채비플래너 전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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