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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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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의 든든한 벗

재외동포의 든든한 벗

나는 2008년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교육문제가 결정적이었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세 아이를 양육하기는 쉽지 않았다. 막대한 사교육비도 부담이었고,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걱정스러웠다. 고심 끝에 3D업종에 종사하는 취업이민을 선택하였다. ​물설고 낯선 곳에서 타향살이가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대충 눈치로 알아듣고 서툰 영어에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겨우겨우 적응해 나갔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빠듯한 일상이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그런데 한국에 계신 연로한 어르신들이 마음 쓰였다. 캐나다에 정착한 몇 달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함께 사는 언니와 나는 “아버지가 딸들을 멀리 보내기 싫으셨나 보다”라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임종은 보지 못했지만 입관은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유난히 정이 많고 딸들을 사랑했던 아버지였다. 서울아산병원에 빈소를 차리고 ○○상조가 장례를 진행하였다. 장례식장 사용료와 음식값이 무척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정장 유니폼을 차려입은 상조회사 직원들이 여럿 나왔는데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식사하는 조문객들에게 다가가 명함을 돌리며 가입 권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주인 동생이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영업행위를 하는 건 아니다 싶어 등 떠밀어 내보냈다. ​그로부터 9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한국으로 향했다. 아버지 때 경험이 있어 그런지 부담은 덜했다. 이번에는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 장례를 맡겼다. 뒷돈과 리베이트 없이 정직하게 장례를 치른다고 해서 미리 가입해 두었다. 예의 바른 젊은 장례지도사들이 성심성의껏 진행을 도왔다. 도우미들도 친절하고 알뜰하게 서빙을 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정산을 하면서 우리 형제들은 무척 놀랐다. 아버지 장례 때 비용의 절반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외아들이다. 혼자 사는 것도 늘 마음이 쓰였고, 시부모 봉양도 걱정이었다. 두 분은 3년 전부터 중환자실과 요양병원 오가며 생활하셨다. 그러다, 급기야 올해 3월 22일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번에도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 의뢰하였다. 비행기 편이 원활하지 않아 장례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두 아들(둘째는 코로나 양성)과 함께 입국할 수 있었다. 남편은 코로나로 인해 장례식장을 구하지 못해 멀리 문산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장례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적어서 놀랐다고 한다. 이튿날 시아버지 유해를 고양시의 한 수목장에 모실 수 있었다. 젊은 장례지도사는 5일에 걸친 긴 장례를 끝까지 함께 하였다. 남편은 감동하며 수고비를 내밀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나는 두 번의 장례를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치렀다. 앞으로도 장례가 발생한다면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 믿고 맡길 것이다. 나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늘 고국에 있는 가족이 걱정이다. 그중에서도 어르신들의 장례는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장례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재외동포들의 든든한 벗이 되어주길 바란다. [수정][삭제]

이성희 조합원
2022.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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