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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장

박종필 감독

박종필 감독

2017년 7월의 마지막 날 오전 10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광화문광장에서는 한 생을 바쳐 가장 낮은 사람들을 카메라로 비췄던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의 인권사회장 영결식이 열렸다.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최근 몇 년 간 고인이 가장 많이 발걸음을 했을 광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고 모여들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은 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누가 부르거나 시키지 않아도, 한 대의 카메라가 아쉬웠던 현장에 늘 나타났다던 고인은 평생 빈민과 장애인 인권에 대해 탐구했고, 간암 진단 이후 카메라를 내려놓기 직전까지 세월호와 촛불 광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택시 운전하던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이 그리는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그림을 버렸고, 붓 대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던 고인. 지난 20여년 동안 그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카메라에 담았고,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권 활동가들의 치열한 현장을 기록했다. 몸이 아픈 것도 모른 채, 세월호 선체 수색작업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는 목포 신항, 그 자리를 지켰던 사람. 자신이 말기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부담이 될까 절대 알리지 않았던 그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말은 “미안하다”였다. 고인은 장애인들에게는 '금관예수'였고, 다큐멘터리스트에게는 존경받는 선배이자 스승이었으며, 세월호 가족에게는 은인이었다. 고집스런 원칙주의자 박종필 감독의 평안한 안식을 기억하며, 사람들은 그가 우리 곁에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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