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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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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포기했어도 한겨레두레는 지켰다

가족은 포기했어도 한겨레두레는 지켰다

올해 9월이 되면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하 한겨레두레)과 인연을 맺은 지 꼭 10년이 된다.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나는 부산지부를 창립하면서 조합원이 되었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금도 조합원으로 있다. 지금은 부산지부가 활동이 뜸하지만 조합원이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고귀한 생명을 떠나보내는 일이야말로 가장 존엄하고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공동체 정신 속에서 이어져 왔던 상포계의 정신은 온데간데없다. 장례는 온갖 거품과 바가지로 ‘돈’버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오래 전부터 홍역을 앓고 있는 이런 상조문화를 보면 아주 안타깝다. 그래서 한겨레두레의 상호부조 정신은 여전히 나의 자랑이다. 나는 1인 가구 취약계층 주민들, 소위 쪽방 주민들과 ‘내미는 마음’이라는 자조모임을 하고 있다. 혼자서 쪽방에서 생활하는 주민이 모여 함께 밥 먹고 사는 얘기를 나눈다. 도배 봉사활동도 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분들은 대개 술을 과하게 드시는 습관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많고, 심한 경우 삶의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지난주에 우리 모임의 장OO형님이 결국 그 놈의 술에 빠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술만 드시지 않으면 너무나 점잖고 좋은 분인데, 술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응급실에 실려 갈 때까지 끝장을 보는 분이다. 그러다 결국 심정지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혼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오랫동안 생활하였으니 주위에 가족이 있을 리 만무했다. 법적으로는 형제가 있고 아들도 있다고 해서, 어렵사리 동주민센터에서 연락을 했는데 가족들은 시신 포기각서를 쓰고 말았다. 그렇게 장제급여 80만 원으로 우리가 마지막 가는 길을 모셔야 했다. 수년 동안 함께 했던 형님을 초라하게 보낼 수 없어서 ‘내미는 마음’ 회원과 함께 공동체 장례를 준비했다. 하지만 현실의 법적인 장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빈소를 차리고 싶어도 권한이 없어서 불가능했다. 형님이 거주하고 있는 부산시 동구에 공영장례가 만들어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가족에게서 시신 위임장을 받아야만 공영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가족도 시신을 포기한 사람의 장례를, 지인이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면 어느 누가 ‘시신 위임장’을 써주겠는가. 공영장례는 고사하고 하루라도 빈소를 꾸미고, 국화꽃 장식을 하고 육개장이라도 한 그릇 나누려면 비용이 발생한다. 우리도 돈을 모았지만 부족해서, 할 수 없이 한겨레두레의 문을 두드렸다. 한겨레두레는 흔쾌히 장례물품과 비용을 지원해 주었다. 가족마저 외면하고 포기한 고인을 한겨레두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조합비 한 번 낸 적이 없는 쪽방 주민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한겨레두레 덕에 쪽방 주민과 활동가들, 여러 단체, 교회가 모여서 여느 상갓집 못지않게 빈소도 잘 꾸미고 예쁜 생화로 고인이 누워 있는 관의 빈틈을 메웠다. 마지막 가시는 길,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별할 수 있었다. 한겨레두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런 분들 보낼 때 좋은 마음으로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내가 한겨레두레의 조합원이라서 또 다행이다. 죽음의 장벽 앞에서 손 내밀 수 있는 조합이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정말 자랑스럽다. 앞으로 ‘채비’를 통해서 좀 더 인간 중심적인 공동체 장례문화를 더 멀리 전파하기 바란다. [수정][삭제]

임기헌 조합원
2021.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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