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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후기

022
할머니 이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할머니. 긴 한 생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 명의 자식을 키우는 일은 분명 고되고 어려웠을 거예요. 거기에 저란 손자까지 추가되니 자식을 다섯 번 키우는 느낌이셨겠죠. 어제, 할머니를 떠나보냈고 오늘은 글자로 추억을 남겨보려고 해요.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시영아파트 127동, 제가 자란 곳이고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은 곳이에요. 지금은 재개발로 그 아기자기한 동네는 사라졌지만 제 기억 속에는 아직도 놀이터에서 제 그네를 밀어주시던 할머니가 있네요. 할머니의 작은 손가방에서는 청포도 사탕, 스카치 사탕이 나왔고, 버스 토큰도 나왔어요. 그 구멍 난 동전이 왜 그리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여전히 제 기억에 남아 있네요. 할머니, 할머니랑 쑥을 캐러 갈 때면 저도 따라 나서곤 했어요. 덜 여문 머리로 쑥인지 잡초인지 헷갈렸던 것도 같아요. 놀이터에서 BB탄 총알을 주워 모으던 저는 하늘이 석양으로 물들 때 쯤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죠. 저녁식사, 할머니는 흰쌀밥은 안 해주셨어요. 콩자반에 잡곡밥이 떠오르네요. 어린 저에게 금기와 같았던 박카스는 뚜껑에 따라서 한두 모금 주셨지요. 제 어린 시절을 물들이는 디지몬 어드벤처, 포켓몬스터와 같은 애니메이션 상영시간이 되면, 저는 티비 앞에 앉았고 할머니는 늘 과일을 주셨어요. 티비에 정신이 팔린 채 과일을 다 먹고 나면 저녁 7시가 넘었죠. 어느 날은 애써 모았던 포켓몬스터 고무딱지를 대부분 잃고, 하나 남은 것도 잃을 상황에서 주기 싫어서 무작정 집으로 도망을 쳤어요. 그때 쫓아온 동네 녀석을 할머니가 내쫓아주셨지요. 저는 그 광경을 삼촌 방에 숨어서 다 지켜봤어요. 할머니, 어젯밤에는 제 손톱이 길었더라고요. 손톱을 깎으려다, 문득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나타난다 했던가. 할머니가 밤에는 손톱 깎지 말라던 게 그 말씀이 떠올라서 대낮인 지금 손톱깎이를 찾고 있어요. 이젠 입도 커져서 밥도 조금씩 베어 먹지는 않아요. 마지막으로 뵀을 때, 할머니는 절 알아보시곤 활짝 웃어주셨지요. 그런데 오래 머물지 못해 죄송해요, 삼촌집 할머니 방에 더 오래 머물었다간 가족들 다 있는데서 울 거 같아서…. 승지를 더 오랜만에 보시는 거니까, 라며 핑계를 대고 나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네요. 돌이켜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고무딱지와 BB탄, 올림픽공원 평화의문 지붕 아래처럼 알록달록하네요. 지금에 와서는 스카치, 청포도, 키세스 쿠키크림맛 만큼이나 달콤하게 느껴져요. 이제 제 기억 속에 사셔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부 인사를 올립니다. 가끔 찾아뵐게요. 사랑합니다. 어렸을 때 38동으로 돌아가는 저에게 창문 밖을 내다보시던 할아버지에게 잘 주무시란 뜻으로 ‘하늘나라 가세요!’라고 외치던 철없는 제가 떠오르네요.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들었죠, 그 당시엔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했지만요. 이젠 정말 하늘나라로 떠나셨으니 인사드려야겠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요. – 캐나다 캘거리에서 손자 일지 올림 (2018-07-05 에 작성된 글을 옮겼습니다. 관리자) [수정][삭제]

김일지 조합원
2020.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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